부루(가엽원으로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 함) - 김와(하늘이 점지한 개구리 같은 어린일, 해부루의 수양아들이며 태자임) - 대소에게로 세습된다. 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15년, 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 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왕에게 망
섬기며 제사를 지냈다.
(4)금와 [金蛙(蝸)]
늙도록 자식이 없어 산천에 기도하며 정성을 들이던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어느날 곤연(鯤淵) 못가의 큰 돌 밑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개구리 모양의 아이를 발견하여 이렇게 이름지었다. 자라서 태자(太子)가 되고, 해부루를 이어 동부여의 왕이 되었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4] 이때,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얻어 그 여자에게 (내력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저는 하백의 딸 유화라고 합니다. 동생들과 함께 나와 놀고 있을 대,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다.’고 하면서, 저를 웅심
부루의 서손이고 어머니는 소서노로 졸본사람 연타발의 딸이다. 그녀가 처음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으니, 장자는 비류이고 차자는 온조이다. 우태가 죽고, 후에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결혼하였는데,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서 난 아들 유리가 오자 이를 세워 태자로 삼고 왕위를 잇
부루가 왕위를 이었다.
아들이 없던 북부여왕 해부루는 큰 돌 밑에서 나온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 금와를 태자로 삼고 왕위를 이었다. 금와가 왕위를 계승하였을 때 태백산 남쪽에서 해모수와 혼인하였다는 한 여자를 만나 그녀를 방속에 가두었더니 햇빛이 그 여자를 따라다니며 태기가 생기고 알
태자로 책봉됨에, 왕위계승권을 잃어버린 비류와 온조가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남하하여 미추홀에 정착할 때, 아들들과 동행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온조왕 13년(서기전 6) 온조왕의 어머니가 61세로 죽었다고 하는데, 만약 이것이 소서노를 가리킨 것이라면 그녀의 생몰년은 66~서기전 6년
태자가 되자, 온조와 비류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에, 온조는 위례에 정착하였다가 비류가 죽자 그 무리가 온조집단에게 통합되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비류 중심의 건국설화에서는 비류와 온조가 해부루(解夫婁)의 서손인 우태와 졸본부여 연타발의 딸 소서노(召西奴) 사이에
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나타나 부여를 동쪽으로 옮기게 하여 세운 나라이다. 그리고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나자 금 빛이 나는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나와 금와라 이름 짓고 태자로 삼았다.
동부여에서 금와가 왕이 되고 난 후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